2024년 4월 김책공업종합대학 신입생들이 AI(인공지능) 강좌를 듣고 있는 모습. (필자 제공)


2006년 5월 두 차례 평양시 만경대구역에 있는 조선컴퓨터센터(KCC)를 방문한 경험이 있다. 1990년 설립된 KCC는 당시 내각 직속의 '국가 컴퓨터프로그램산업의 중심기지'였다.
"21세기는 정보산업의 시대입니다"란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글귀가 붙어 있는 회의실에서 KCC가 개발하고 있는 프로그램 등에 대해 대략적인 설명을 듣고 10여 개의 부속 개발센터 중 몇 곳을 직접 둘러봤다. 그중 가장 눈길을 끈 곳은 '인공지능기술개발전 야마토게임예시 문'이라고 소개된 청봉정보센터였다. 당시로서는 다소 생소한 인공지능프로그램의 개발과 보급을 맡고 있는 연구개발센터였다.
이 센터에서는 자연언어처리·추론·검색 등의 여러 부문으로 나눠 150여 명의 20~30대 연구원들이 조선문자인식프로그램, 음악자동검색프로그램, 통계추론프로그램, 얼굴인식프로그램, 음성인식프로그램, 다국어 자동번역프로그램, 바다이야기슬롯 '규칙에 기초한 추론체계' 등을 연구·개발하고 있었다.
북한에서 '인공지능'(AI)이란 용어를 사용하기 시작한 시점도 조선컴퓨터센터 설립 무렵이다. 2000년에는 김일성종합대학과 김책공업종합대학에 AI 강좌가 개설돼 AI 분야 인력양성도 본격화됐다.
1997년 KCC는 낮은 수준의 인공지능 기술을 적용해 바둑프로그램 ' 릴게임방법 은별'을 개발했다. '은별 2010' 버전까지 나온 인공지능 바둑프로그램은 매년 세계컴퓨터바둑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해 당시로서는 최고 수준으로 평가받았다.
그러나 북한 최고의 컴퓨터 소프트웨어 개발기관인 KCC의 당시 AI 기술은 군사 분야에 활용되는 프로그램이나 해외에서 용역을 받아 프로그램을 개발하는데 일부 적용되는 수준이었다. 정작 북 카카오야마토 한 경제와 주민들의 실생활과 관련된 분야와는 거리가 멀었다. 당시만 해도 북한의 컴퓨터, 휴대전화, 디지털 가전제품의 보급률이 극히 낮았기 때문이다.
북한이 AI 기술을 적용해 성과를 낸 분야는 다국어 기계번역이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KCC 청봉정보센터가 개발한 '자동번역프로그램'의 수준에 만족하지 않고 2006년 말 김일성종합대학에 릴박스 '영조 기계번역 프로그램' 개발을 지시한 후 2008년 1월 '제18차 전국프로그램경연 및 전시회'에 직접 참석해 김일성종합대학 연구원들이 개발한 번역 프로그램 '룡남산'의 시연 장면을 참관했다. 그리고 10년 뒤인 2017년 김일성종합대학 인공지능기술연구소는 인식 성능과 정확도 측면에서 상당한 개선을 이룬 음성인식프로그램 '룡남산5.1', 7개국 언어 쌍방향 기계번역기 '룡마'를 개발했다.
북한은 2013년에 내각 산하에 국가기관 차원의 첫 AI 연구 조직이라고 할 수 있는 인공지능연구소를 설치했다. 2019년 무렵부터 AI 분야는 2000년대에 들어와 강조되던 컴퓨터화, 정보화의 핵심분야로 자리 잡기 시작했다. 북한은 4차 산업혁명의 핵심기술이 인공지능이라며 향후 인공지능 제품 개발을 적극 추진할 방침을 공개적으로 밝히기도 했다.
2019년 '수자경제와 정보화 열풍'을 주제로 개최된 '전국정보화성과전람회-2019'은 변모된 북한의 AI 기술 수준을 잘 보여줬다. 2016년부터 시작된 이 전람회는 북한이 개최하는 IT 분야 최대 행사다. 이 행사에서 AI, 로봇 기술, 사물인터넷(IoT), 안면인식, 전자상거래, 전자결제 등이 화두로 등장했다. 게임, 안면인식, 디지털 사전 등 새로운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앱)과 3D프린팅 기술 상용화 사례까지 소개됐다.
당시 김일성종합대학 첨단기술개발원 정보기술연구소는 얼굴 인식기, 지능 고성기, 화재감시기 등 5개의 AI 제품 등 총 10개 제품을 출시했다. 정보기술연구소 관계자는 인공지능기술, 증강현실기술, 자율조종기술, 정보보안기술을 4대 전략 목표로 설정했다며 지능의료진단, 홀로그램, 자율조종로봇, 자율주행체계, 휴대전화 및 사물인터넷 보안 기술을 개발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초보적이지만 구름연산(클라우드 컴퓨팅)과 대자료(빅데이터) 관련된 제품도 공개됐다. 대표적으로 사례로 소개된 '보안영상감시체계'는 심층신경망(딥러닝) 기술을 활용해 얼굴인식, 차번호인식, 불법침입자검출 등이 가능하며 빅데이터 기술도 적용됐다고 한다.



(평양 노동신문=뉴스1) = 북한 강원도 정보통신국 일꾼들의 모습 [국내에서만 사용가능. 재배포 금지. DB 금지. For Use Only in the Republic of Korea. Redistribution Prohibited] rodongphoto@news1.kr


4년 전부터 AI 분야 본격 힘 싣는 北…최근엔 챗GPT 활용도
2021년 노동당 제8차 대회 이후 북한은 "인공지능 분야에서 하루빨리 세계적 수준을 돌파하는 것"을 중요과제로 설정했다. 기구 개편도 단행해 국무위원회 산하 정보기술 담당 부서를 확대 개편하는 한편, 정보통신 분야 주요 기관인 체신성(통신 업무)과 전자공업성(IT 하드웨어 담당), 국가정보화국(정보화 사업 총괄)을 합쳐 정보산업성을 내각 산하에 신설했다.
최근에는 '오픈AI'가 개발한 대화형(생성형) AI 서비스 챗GPT도 활용하기 시작했다. 김일성종합대학 인공지능기술연구소는 "GPT 기술을 이용하여 사람들의 정신노동까지 대신하는 높은 목표"를 세웠다고 공개적으로 밝히기도 했다. 북한은 대학에 인공지능학과 신설도 추진하고 있다.
1990년대에 KCC와 김일성종합대학을 중심으로 기초연구를 시작한 북한의 AI 기술은 이제 '챗GPT 북한판'을 만들려고 시도하는 단계까지 발전했다. 한국과 마찬가지로 데이터·기술·인프라·인재·법·윤리 기준 등 모든 요소를 자국 주도로 갖추는 '소버린'(Sovereign) AI 개발에 눈을 돌리기 시작한 것이다.
국가와 대학 단위의 AI연구소뿐만 아니라 4차 산업혁명 시대의 핵심기술로 주목받고 있는 AI, 빅데이터 분석, 사물인터넷, 클라우드 컴퓨팅 등을 적용해 상용제품을 내놓은 회사들도 크게 늘었다. 올해 10대 최우수 정보기술기업으로 선정된 삼흥경제정보기술사, 앞날첨단기술교류사, 평양광명정보기술사, 푸른하늘무역회사, 조선만경무역회사 등이 대표적이다.
이러한 회사들과 대학 연구소가 올해 10월 개최된 '전국정보화성과전람회-2025'에 내놓은 제품들은 상당한 수준의 AI 기술을 보여줬다. 올해 전람회에 대해 북한은 "지난 수년간 정보통신기술과 '수자기술'(숫자기술, 디지털 기술), 인공지능 기술의 급속한 발전으로 국가관리와 사회생활의 모든 분야에서 정보화, 수자화가 새로운 높은 단계에 올라섰음을 보여주고 있다"고 자평했다. 특히 행사 기간에는 인공지능(AI) 프로그램 경연, 프로그램 작성 경연, 수자식(디지털)TV, 지능형손전화기(스마트폰)를 비롯한 정보기술 제품을 생산하는 단위들의 경연이 진행됐다. 지능형 안내 로봇, 음성인식과 화상인식 기술을 탑재한 교육용 로봇 등이 이채로운 관람 거리로 등장하기도 했다.
과거와 달리 북한에서도 AI 기술이 연구실이나 산업현장 외에 600만대 이상 보급된 휴대전화, 보편화되고 있는 컴퓨터와 디지털TV의 사용이라는 변화된 주민생활 속으로 스며들고 있다. 북한의 스마트폰에도 음성 인식과 번역, 사물 인식 등의 인공지능 기술이 도입됐다. 북한 전역을 연결하는 폐쇄형 인트라넷인 '광명망'은 이메일, 뉴스, 검색, 온라인 게임, 전자 쇼핑 등 다양한 웹사이트와 서비스가 제공되는데, 여기에도 AI 기술을 활용한 다양한 프로그램들이 제공되거나 판매되고 있다고 한다. 그중 압록강기술개발무역회사가 심층신경망 기술을 이용해 개발한 얼굴 화상 복원 프로그램 '선명 1.0'은 지난해 개최된 '북러 정보화 성과전람회'에서도 우수한 평가를 받았다.
북한이 최근 AI 기술을 의료, 군사, 정보화 등 다양한 분야에 적극적으로 도입하면서 AI를 활용한 전쟁 시뮬레이션, 무인기 운용, 사이버 공격 능력 강화 등 군사적 목적의 활용에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다른 한편에서는 북한이 자체적으로 법적, 제도적 틀을 개정하고 국제 표준에 맞춰서 인공지능 기술을 개발하고 있기 때문에 향후 남북 협력에 있어서 괴리감을 줄일 수 있다는 평가도 나온다. 실제로 지난해 북한은 러시아와 '포괄적인 전략적 동반자 관계에 관한 조약'을 맺고 과학기술·IT 부문에서 전방위 협력을 추진하기로 했다. 여기엔 인공지능 부문에서 협력한다는 내용도 담겨 있다. 앞으로 남북 인공지능 공동연구나 공동 학술대회 개최도 추진해 볼 수 있는 단초다.
AI 기술을 적용한 디지털경제로의 전환은 단순한 기술의 변화가 아니라, 생활방식의 혁명적 변화를 가져올 것으로 예상된다. 북한도 예외가 아닐 것이다. AI 기술의 군사적 활용에 대한 대비와 함께 AI 기술이 북한 경제와 주민생활의 변화에 미칠 영향에 대한 종합적인 연구가 필요한 이유다. 기자 admin@119sh.inf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