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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 admin@119sh.info
[김상목 기자]
▲ <종이 울리는 순간> 스틸
ⓒ 시네마달
2021년 개봉한 <강릉>은 지역 사회의 일원으로 조화롭게 굴러가던 강릉 최대의 '조직'에 닥친 돌
릴게임바다이야기 이킬 수 없는 위기를 배경으로 삼는다. 평창 동계올림픽을 앞두고 개발 특수가 한창이던 시기, 강릉에 들어설 대형 리조트를 둘러싸고 리조트 지분을 보유한 서울 조직이 이권 참여를 요구하며 무차별 공세를 펼치고, 가능한 피를 보지 않으려던 주인공의 조직은 강요된 변화를 통해 바뀐 시대에 '적응'해 나간다.
갱스터 영화의 전
릴게임오션파라다이스 설, <대부>에서 '지속 가능한' 조직 운영을 위해 마약에는 손대지 않던 콜레오네 조직이 결국 대세에 휩쓸리는 결과를 고스란히 답습한 해당 영화에서 역습에 성공한 주인공의 조직 2인자는 라이벌 서울 조직 맞수를 쓰러뜨린 후 묻는다. 왜 평화롭던 동네를 지옥으로 만드냐며, 그러자 상대는 말한다. 원래 세상은 그런 거라며, 뺏고 뺏기며 함께 빠져드는 거라는 투
릴게임손오공 다. 욕망으로 가득찬 수라의 세계에선 남의 사정이나 공존은 사치란 논리다.
<종이 울리는 순간>은 장르도, 접근법도 생판 다르지만, <강릉>과 핵심 배경을 공유한다. 바로 우리에겐 우여곡절을 딛고 성공적 개최로 기억되는 2018년 평창 동계올림픽의 어두운 이면이다. 한때의 열광 이후 잊힌 그곳, 과연 그 땅에서 벌어진 일은 무엇이고 지금은
손오공게임 어떤 상황인지 들여다보자.
3일간의 스포트라이트와 맞바꾼 천년 숲
릴게임바다이야기사이트▲ <종이 울리는 순간> 스틸
ⓒ 시네마달
강원도 정선군 가리왕산은 인위적으로는 조성 불가능한 태고의 숲이 울창해 하고많은 숲 중에서도 유전자 보존림으로 선정된 곳이다. 이곳에선 수많은 동식물이 오랜 세월 서로 적응하고 협동하며 공생해 왔다. 그 가치는 선조들에게도 오롯이 받아들여져, 조선 왕조 시절엔 '왕의 숲'으로 불릴 정도였다.
한반도에 닥친 근현대 격동에도 불구하고 가리왕산은 원래의 상태를 지켜올 수 있었다. 그러나 21세기 들어 시련이 닥친다. 산간지대인 데다 남북분단으로 인해 설정된 방대한 군사분계선으로 인해 지역 개발이 숙원이던 강원도가 동계올림픽 유치에 사활을 걸면서부터다. 개최 후보지로 오른 평창은 몇 번의 실패 끝에 마침내 2018년 개최를 확정한다. 강원도와 주민들은 발전과 번영의 전기가 될 것을 기대하며 환호성을 지른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동계올림픽의 꽃이자 상징 같은 종목, 알파인 스키 경기를 치를 장소가 마땅찮은 것이다. 강원도에 스키장이 곳곳에 있다지만, 국제규격을 충족하는 장소는 찾기 힘들었다. 최적지로 정선군 가리왕산 일대가 거론되기 시작한다. 수백 수천 년 묵은 원시림을 불과 며칠 동안만 쓰기 위해 훼손하려는 시도에 거센 반발이 일어나지만, '국책사업' 앞에서 모든 반대는 무의미했다. 그나마 거센 반대 덕분에 얻은 성과는, 2개를 지으려던 스키장을 1개로 축소하고 올림픽 이후 원상 복구하겠다는 강원도의 약속이었다.
그렇게 올림픽은 성황리에 끝났다. 이제 예정된 복구만 남았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기껏 지은 시설을 유지하자는 강원도와 지역 주민들의 요구가 (우려한 그대로) 격렬하게 일어난다. 주무부서인 산림청은 일찍이 맺은 협약을 집행하려 하지만, 기대한 올림픽 특수를 누리지 못한 도는 물론, 주민들의 반발은 거세다. 차일피일 복구는 미뤄지고, 이미 훼손된 자연이 제대로 돌아올지도 의문이다. 카메라는 화려한 불꽃이 꺼진 후 차가운 현실을 조망한다.
자연 다큐멘터리의 정석에 충실한 출발
▲ <종이 울리는 순간> 스틸
ⓒ 시네마달
지구의 인간으로 최초로 우주공간에서 자신의 모행성을 바라본 우주비행사 유리 가가린은 창백한 망망대해 같은 공허 속에서 오직 푸르른 작은 점을 보았다고 말했다. 근대 과학문명 이후 인류는 자신이 거머쥔 강대한 힘으로 숱한 자연을 파괴했지만, 역설적으로 그 능력으로 확보한 광활한 시야 덕분에 자신이 무슨 일을 저지르고 있는지와 자연의 경이로움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런 체험을 겪는 이들, 대양과 우주를 두 눈으로 목겨한 이들이 환경보호에 눈을 가장 먼저 뜬 사례는 무수히 많다.
<종이 울리는 순간>은 가리왕산의 숨은 비경으로 관객을 안내한다. 그저 평범한 묵은 숲으로 보이던 그곳에는 조화로운 생태계가 펼쳐져 있고, 도시인은 구별하기 힘든 수목 가운데는 석탄기로 거슬러 오르는 고대의 유산과 조상들이 나물로 먹고 종이의 재료로 쓰던 유용한 것들이 즐비했다. 남들은 애써 복원하려 애쓸 법한 천혜의 자원이 가리왕산 곳곳에 자연스레 존재하고 있었다.
풍요로운 기반 위에 다양한 동물군이 자리잡고 있었다. 둥지에서 입을 벌린 새끼에게 먹이를 전하는 팔색조와 딱새의 행동은 저절로 보는 이의 감성을 적신다. 나무구멍에서 하늘다람쥐가 기지개를 켜고, 담비와 삵, 수달이 빼꼼히 모습을 비친다. 멧돼지와 노루가 수풀을 활보하며 자유롭게 지낸다. 인간만 방해하지 않으면 지금껏 그래온 것처럼 가리왕산은 앞으로도 영속적으로 비인간 주민들에게 보금자리가 될 터이다.
카메라는 오랫동안 공들여 그 땅에 터를 잡고 살아온 원래 주인들을 조명한다. 관객이 가리왕산의 생태계를 제대로 확인해야 이야기를 풀어갈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총천연색으로 근접촬영한 대낮의 생태계는 적외선 장비를 활용한 야간의 자연스러움으로 전환되고, 화면 한켠에선 그들의 존재를 자막으로 해설하며 생소한 풍경과 존재들을 알린다.
서서히 짙은 안개가 가리왕산을 감싼다. 아니, 엄습하는 것처럼 보인다. 기계톱의 굉음이 저 너머에서 들리고, 숲길에는 위압적인 중장비와 차량이 끊이지 않는다. 자연의 소리만 가득하던 시공간에 인위적 굉음과 불안을 조성하는 배경음악이 깔린다. 공포의 서막이다.
일단 시작된 파괴는 멈출 수 없다
▲ <종이 울리는 순간> 스틸
ⓒ 시네마달
가리왕산을 지키려는 이들의 끈질긴 항거에도 불구하고 파괴는 막을 수 없었지만, 그나마 약속을 받았으니 복구하면 될 일이라 여길 관객에게, 이야기는 이상하게 흘러가기 시작한다. 중앙정부와 지방정부가 공개 약속한 복원이 차일피일 미뤄지는 것이다. 명분으로 내세운 건 지역 주민들의 요구다. 자연 파괴와 강제이주 등을 감수하며 치른 올림픽에서 수혜를 좀 얻자는 것이다. 원상 복구하면 대체 그동안의 희생은 뭐가 되냐는 울분과 하소연이 교차한다. 기왕 숲을 밀어버리고 설치한 걸 해체하느니 적절하게 활용하자는 어디서 많이 본 주장이 뒤를 잇는다.
여기까지면, 개발 대 보호라는 환경영화의 전형적 이분법 구도에 충실해 보인다. 그러나 <종이 울리는 순간>은 그런 단순 논리에만 기대지 않는다. 환경을 중시하는 이들에게 분노를 점화하는 근시안적 접근 대신에 문제의 본질을 일깨우고 대립하는 이들과 대화를 청하려는 자세를 확고히 한다. 이는 단순 기계적 중립과는 궤를 달리 하는 중용의 미덕으로 기능한다.
정치인이 등장한다. 해당 지자체장인 정선군수다. 그는 자신도 과거에 영월과 동강 댐 건설에 반대하는 활동가였음을 밝힌다. 그는 지역의 실정과 함께 올림픽 유치를 위해 무리한 약속을 한 거라며 자신의 입장을 토로한다. 그저 개발논리를 대변하는 것만으로 끝나지 않고, 카메라는 처음엔 가리왕산의 소중함과 아름다움을 찬탄하던 주민들이 원상회복 사안에 이견을 드러내는 당혹스러움으로 관객을 이끈다. 그들이 단순히 지역 번영이란 신앙을 맹신하는 것 같지는 않다.
영화는 단기적 이익에 매몰된 어리석은 지역 주민 vs. 미래를 걱정하는 깨어있는 시민과 운동가 구도로 해당 사안을 환원하지 않는다. 대신에 꺼낸 건 민주주의의 본질을 향한 질문이다. 과연 가리왕산은 누구의 것인가? 질문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단계를 옮기며 난이도를 높인다. 정선군민의 것인가, 강원도민의 것인가, 대한민국 국민의 것인가, 원주민이지만 인간의 언어를 구사할 수 없는 비인간 주민들은 발언권이 없는가. 대체 올림픽의 수혜는 다 어디로 갔는가? 그렇게 제작진은 근본적인 물음을 거듭한다. 그래야 해답을 찾고 교훈을 얻을 수 있으니.
전 지구적인 시야로 올림픽의 가치를 묻다
▲ <종이 울리는 순간> 스틸
ⓒ 시네마달
이런 문제는 한국만 벌어지는 걸까? 물론 그럴 리 없다. 카메라는 2026년 동계올림픽이 예정된 이탈리아 밀라노-코르티나로 향한다. 여기는 문제가 없을까? 현지 상황과 전문가 인터뷰를 취재해 교차 검증에 나선다.
예상대로 가리왕산에 닥친 일이 판박이로 진행중이다. 이탈리아 정부 역시 지속 가능한 올림픽 개최를 약속했지만, 실제 상황은 퍽 달랐고, 올림픽이란 거대 행사가 이권을 둘러싼 각축일 뿐, 자연 훼손은 물론 해당 지역 주민들에게도 그들이 꿈꾸던 이익을 보장하지 않는다는 어두운 진실만 드러난다. 그저 정치가의 치적과 토건자본의 배 불리기만 확인될 뿐이다. 사실상 마피아가 따로 없는 셈이다.
영화는 올림픽의 신화를 해체하고, 21세기엔 더는 이 축제가 상징하던 가치와 의의가 유효하지 않음을 폭로해 나간다. 평창의 교훈을 이탈리아 시민들에게 전하고, 그들의 걱정을 한국 관객에게 옮기며 연대의 손길을 내밀려 한다. 그동안 국내에선 쉽게 보기 힘들던 시도다. 21세기 세계화에 환경운동과 다큐멘터리 작업도 시야가 확장되고 있다는 신호탄이기도 하다.
이야기는 이제 코르티나 숲에서 사형 집행을 앞둔 나무를 애도하는 음악가의 연주와 가리왕산의 초토화된 현장을 교차 연결한다. 어떻게든 재생을 노력하는 애타는 시도와 벌어질 파괴를 막으려는 간절한 호소가 겹쳐지고, 국경을 뛰어넘는 국가와 자본의 폭력 대 공존을 꿈꾸는 시민의 구도가 관객의 뇌리에 서서히, 그러나 뚜렷하게 새겨진다. 도지사를 어느 당이 잡냐를 초월한 울림이다.
영화는 자연 다큐의 전형성 안에서 새로운 논점과 국제연대라는 변주로 관객에게 다가간다. 자연 파괴로 인한 기후위기에 직면한 21세기 지구, 이전투구의 장으로 전락한 지 오래인 동계올림픽은 정작 그 업보로 인해 금세기 내에 소멸할지 모른다는 묵시록적 경고가 준엄하게 다가온다. 그런 전 지구적 조망 속에서 가리왕산 복원을 위한 싸움은 철저히 지역적으로 벌어진다. 파면 팔수록 복잡한 문제를 풀기 위한 단초로서 <종이 울리는 순간>은 자신의 소임을 다하려는 충만한 의지의 작업이다.
<작품정보>
종이 울리는 순간As the Bell Rings2025 한국 다큐멘터리2025.11.12. 개봉 80분 전체관람가감독 김주영, 코메일 소헤일리내레이터 솔비출연 남준기, 윤여창기획/제작 유랑필름공동기획 (사)산과자연의친구배급 시네마 달
2025 22회 서울국제환경영화제 한국경쟁 대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