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AI 대전환 ◆
"정답은 맞았는데 중간 부분을 자세히 안 써서 AI가 감점했네, 중간에 식을 더 써볼래?" 12일 서울 노원구 염광고등학교 1학년 교실. 교사가 이같이 말하자 교육용 태블릿인 '디벗'과 터치펜을 잡은 학생들 손이 바빠졌다. 학생들이 교실 화면에 띄워진 문제를 보면서 각자의 태블릿에 풀이 과정과 답을 써내면 교사는 학생의 진행 상황을 확인할 수 있다. 한 학생이 유로화와 파운드화 환전을 함수로 환산하는 문제를 풀자, 즉시 교사의 화면에 학생의 점수가 떴다. 이들이 사용하는 프로그램은 미국 제품인 '원노트'와
'스노클'로 연간 사용료가 약 25만원이다.
이 교사는 "디지털 기반 학생맞춤교육 연구학교로 선정되며 받은 예산으로 사용료를 부담하고 있다"면서 "내년 예산이 없으면 사비로라도 교육을 이어가려 한다"고 말했다.
정부가 '인공지능(AI) 3대 강국 도약'을 위해 AI 예산을 3배 이상 확대하고 AI 인재 양성 방안을 내놨지
만 실제 교육 현장의 반응은 미온적이다. 2020년 이후 AI·디지털 인재 육성 대책을 여러 차례 내놨지만 예산과 교원의 역량 개발 기회 부족, 시스템 부재 등 교육 현장의 열악함은 여전히 개선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서울교육청이 김성애 남서울대 교수팀을 통해 실시한 'AI 인재 양성을 위한 로봇 활용 교육 정책 방안 연구'에 따르면 서
울 시내 1195개 초중고 중 절반에 가까운 575개(48.1%)가 로봇 활용 교육을 실시하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관련 교육을 실시하지 않는 이유로 '예산과 기자재 부족'이라고 응답한 비율이 71.7%(중복 응답)로 압도적으로 높았다. 시간 부족(58.6%), 담당 교사 부재(56%) 등도 미실시 이유로 꼽혔다.
로봇 활용은 AI 교육
의 입문 단계에서 가장 많이 사용된다. 특히 초등학교는 코딩 블록을 통해 로봇의 동작을 제어하거나 코딩의 기초를 다지며 논리력과 문제 해결력을 쌓아간다. 로봇 활용 교육을 실시하는 학교도 예산 가뭄에 시달리는 것은 마찬가지다. 실시 학교 620개 중 157개(25.3%)는 별도 예산이 전혀 없었고, 100만원 미만과 300만원 미만도 각각 129개(20.8
%), 133개(21.5%)에 달했다.
심지어 미실시 학교 중 절반 이상인 53.6%(308개교)가 1개 이상의 로봇을 보유하고 있음에도 교육을 실시하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선생님들이 AI와 로봇 자체에 익숙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들에 대한 역량 강화 교육이 필요한 대목이다.
그럼에도 내년에도 정부 지원은 미미한 수준이다. 이재명 대통령이 최근 발표한 내년도 AI 예산은 10조1000억원이다. 이 중 교육부가 직접적으로 AI 인재 양성에 투자하는 예산 규모는 약 1.2%(1246억원)다. 교육부 전체 예산(약 106조원)과 비교하면 0.1%에 불과하다. 그나마 올해 147억원과 비교하면 상당한 수준으로 증액이 됐다. 이에 대해 교육부 관계자는 "AI 인재 양성에 특화된 정책 관련 예산은 크지 않은 게 사실"이라며 "다만 AI는 이공계뿐만 아니라 인문·사회와도 결합되는 만큼 포괄하면 3500억원 규모"라고 설명했다.
교육청의 경우 세수 부족 등으로 더욱 암울한 상황이다. 서울시교육청의 내년 예산안 약 11조4000억원 중 AI 교육 관련 예산은 불과 0.53%(606억원)만 편성됐다.
정부의 잦은 정책 변화와 불확실성도 정책 피로감만 키우고 제대로 효과를 내지 못하는 실정이다.
국가인공지능전략위원회 사회분과장인 유재연 한양대 교수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대비 한국의 AI 리터러시 지표는 27%나 낮고, AI 교육 관련 교사 연수 이수율은 12%에 그친다"며 현재 상황을 꼬집었다.
이번에 발표한 AI 인재 양성 대책 중 AI 교육자료를 학교 현장에서 활용하겠다고 밝히면서 교과서에서 교육자료로 지위가 격하된 'AI디지털교과서'와 비슷한 사업을 추진한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김성애 교수는 "가장 큰 장애 요인인 예산과 기자재 부족 문제를 해결하고 노후화된 시설을 개선하는 정책을 최우선으로 추진해야 한다"면서 "교육의 일관성을 유지할 수 있는 표준화된 교재를 개발해 보급하는 것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안병준 기자 / 이용익 기자] 기자 admin@reelnara.info